A. 국가의 검열 과정 없이 학자들과 교사들이 자유롭게 편찬한 역사교과서 중에서 각 급 학교에서 자유롭게 선택해 사용하는 체제입니다. 이는 경제협력기구 OECD 국가 대부분이 채택한 체제로 학문의 다양성에 바탕을 두고 다양한 사고 방식을 기른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체제입니다.
A. 기존 역사교과서에는 서술체계, 서술분량, 서술특징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먼저 기존교과서의 총 6개 단원으로 1단원에 선사시대부터 발해까지 100만년의 역사를 통합 서술하였고 1단원의 분량 또한 총 분량의 10%미만으로 서술해 너무 소략합니다. 2단원부터 6단원은 고려시대부터 현대사까지 고르게 서술하여 사실상 고려시대 이후 역사를 서술하여 분량이 고르지 못합니다. 기존교과서는 1단원을 소략하게 서술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시작을 우리와 밀접하게 서술하지 못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는 총 11단원을 서술해 기존 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서술문제를 바로잡아 1단원부터 5단원까지 선사시대(동이족사), 고조선시대(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 여러 나라 시대(단국조선 제후국 독립시기), 다섯 나라 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부여, 가야), 두나라 시대(발해와 통일신라)와 후기 세나라 시기(후삼국 시대)로 나누어 분량을 고르게 서술하였습니다.
A. 우리 민족의 최초 국가인 고조선을 제대로 설명을 해야 고조선 멸망 후 벌어지는 역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역사교과서는 선사시대인 청동기 시대와 같이 고조선의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는 서기전 24세기 고조선의 건국을 부정하지만 《대한민국 역사교과서》는 서기전 24세기에 고조선의 건국을 긍정할 수 있는 문헌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고조선의 역사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분량이 많습니다.
A.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해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여 통일신라라고 부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신라 북쪽에 고구려의 후예 국가인 대진(발해)이 건국되어 두 나라 시기(남북조시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통일신라라는 용어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대국가들은 국호나 왕호 앞에 '대(大)' 또는 '태(太)'라는 의미를 붙이는데 이는 독립된 국가 또는 황제를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광개토태왕이 있습니다. 대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했지만 신당대전을 통해 옛 고구려, 백제의 영토를 차지하였으므로 독립국가로서 국호 앞에 '대' 자를 붙여 대신라라고 하였습니다.
A.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로 이는 당나라에서 부른 용어입니다. 그러나 대조영이 자신이 건국한 나라를 대진이라고 하였으므로 이를 따른 것입니다.
A. 나당전쟁은 신라의 '라(나)'와 당나라 간의 전쟁을 줄여 나당전쟁이라고 말하는데, 이 용어의 시초는 일제 식민사관과 닿아있습니다. 그래서 주체적인 용어로 신라의 앞 글자인 '신'과 당나라의 '당' 자를 붙여서 신당대전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쟁 대신 대전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각 국가의 존망을 두고 다투었기 때문에 대전이라고 하였습니다.
A. 역사를 서술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관점인데 이는 용어에서도 나타납니다. 일제강점기는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점령한 시기라는 뜻으로 피해자의 관점으로 본 용어입니다. 이는 독립운동사가 부정되는 용어입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라고 불린 시기에는 동시에 일제에 맞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항전 또는 항쟁하였기 때문에 대일항전기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A. 기존 교과서에서 독립운동사는 무장투쟁을 상당히 소략하게 써주었고 외교독립론 중심으로 서술하였습니다. 본래 식민지 국가에서 독립해서 독립운동사를 서술할 때는 목숨 걸고 독립 운동했던 무장투쟁사를 중심으로 써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존교과서에서 서술하지 않았던 무장투쟁사를 많이 반영하여 많은 분량과 내용이 들어가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 기존교과서에 반영하지 않았던 사회주의, 아나키즘계열의 독립운동사를 서술하였기 때문에 많은 분량이 서술되었습니다.
A. 중국 역사서에는 중국과 관련된 이민족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는데요. 그중 중국 동부 지역에 살던 이민족을 통틀어서 동이라고 하고, 그 민족이 세운 국가들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동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우리 민족을 동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동이족에 포함된 국가에는 부여, 고구려, 읍루, 예, 한, 동옥저, 왜가 있는데, 이 국가들은 우리 역사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현재 중국학계에서 고대에 산동성, 하남성, 하북성 등지에 발견되는 유적과 유물을 동이족 유물이라고 하였고, 산동성 임기시에 동이문화유적박물관에는 중국의 시조격 인물인 태호 복희씨를 동이족이라고 하였고, 태평성대를 이룬 순 임금과 붉은 악마 치우까지 동이족이라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우리 민족과 동이족과의 연결성을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에는 동이족과 우리 민족과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을 대폭 반영하여 서술하였습니다.
A. 고대인들은 만물 또는 자연현상에 신령이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고대 국가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사회로 고대 국가의 지도자는 종교적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적 지도자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정치권력보다 종교권력이 더 강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동양의 고대 국가 지도자들은 천명(天命) 사상을 통해 자신의 지배권력을 유지하는 명분으로 삼았습니다. 천명 사상이란 하늘에 명을 받아 하늘 아래 땅을 대신 다스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정치적 지도자들은 자신을 하늘의 자손을 뜻하는 천자(天子)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민족의 건국 사화와 개국사화를 통해 알 수 있듯이 한민족의 건국 시조 또는 개국 시조들은 대부분 하늘과 연관된 천명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을 천자라고 부른 천자국이었습니다. 이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지 않은 독자적인 국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문헌으로는 고조선의 단군왕검, 부여의 동명,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이 여기에 해당되고, 고고학적으로는 거대한 제사 터, 제사 도구 등 제사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이 우리 민족의 영토였던 만주와 한반도 그리고 일본열도에서 걸쳐 나타나는데 이 또한 천명 사상을 통해 하늘과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A. 고려는 대외적으로 중원 국가에 맞서 황제국가로써의 면모를 보여주었고, 대내적으로 대신라가 하지 못한 민족 재통일을 달성하였습니다. 또한 거란, 여진, 몽골 등에 맞서 수 차례 전쟁을 하여 고려를 수호하였는데 이는 민중들의 거센 항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고려의 민중들이 거센 항전을 했던 배경에는 고려가 실시한 부병제에 있습니다. 부병제는 농민들에게 농토를 나누어주고 그 대가로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이는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고려의 국방력을 강화하였습니다. 이를 군인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세습되는 토지였고, 하급 관료와 군인의 유가족에게는 구분전이 지급하여 생활 대책을 마련해주었습니다.
보통 토지의 권리에는 소유권과 수조권이 있는데 고려의 토지 소유권은 경작권을 가진 농민들이 가지고 있었고, 수조권은 국가의 관리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농민들은 토지 소출량의 10분의 1만 토지세로 관리에게 주고, 관리는 토지세의 약 7%를 국가에 납부하였습니다. 결국 수많은 외세를 막을 수 있었던 근본적인 배경에는 고려의 토지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려의 멸망 원인도 토지제도의 문란에 있었습니다. 원간섭기에 고려의 정치체제와 토지제도는 무너지게 되는데 이때 고려인으로 원나라에 붙은 부원배 세력이 고려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유력한 가문이 됩니다. 이를 권문세가라고 합니다. 소수의 권문세가는 국가로부터 받은 농민들의 농토를 빼앗아 자신들의 농장에 편입시키고 양민을 농민으로 전락시키게 됩니다. 권문세가의 토지가 강과 산으로 경계를 삼았다고 할 정도로 부를 축적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신진 사대부 중심으로 반대파 세력이 성장하게 되는데 이를 역성혁명파라고 부릅니다. 역성혁명파는 이성계가 명나라에 맞서 요동 정벌을 하는 도중에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고려의 군사력을 장악하였고, 정도전, 조준 중심의 사대부들이 고려의 토지제도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정치 권력을 장악해 고려라는 나라를 멸망시키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결국 고려의 멸망 원인은 문란해진 토지제도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